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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던 옛날 이야기 > 살며 생각하며

서울살던 옛날 이야기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26-08-01 16:32:21
조회수
159

참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귀화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귀화시험을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공부해야 할것도 많고 외워야 할것도 많고...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네요.

한창 어려운 시절이었던 7~80년대에 서울에서 청춘을 보냈던 저는 서울모습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합니다.

화양동, 성수동, 송파동, 문정동...

옛날의 송파,문정,장지동 부근은 당시에 성남에서 서울로 향하는 2차선 도로였지요.

버스는 오직 570번 한개 노선....


2차선 가에는 인도도 없어서 바로 흙먼지가 날리는 곳...

그 길을 벗어난 양쪽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벼농사를 짓던곳...
송파동 부근에는 석촌동이라는 마을로 들어가는 지금의 농로크기의 도로가 있었는데 그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세워져있던...화려한 생김에 비해 초라한 관리를 받던 삼전도비...

조금 떨어진곳에는 2차선 양쪽에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어디에서 물이 들어오는지 몰라도 꽤 깨끗해고 새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의 석촌호수가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성수동에서 화양동으로 흐르던 검붉게 오염된 하천...

이 하천을 복개하고 그위로 전철 2호선이 세워졌는데 지금의 성수동 위세를 보면 제2의 청계천으로 만들수도...

전철만 아니었다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어렵겠지요.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들어서있는 크고작은 공장들 외에 초록색을 보기 힘든곳...

당시의 서울은 그랬습니다.

전봇대에는 견습공 모집 공고들이 부지기수...

저는 좀 길게 다닌곳도 있지만 아마 1년을 넘긴곳이 없었을것입니다.

하루 8시간을 근무하고 잔업시간만 110시간...

그리고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는 일당 550원에 잔업수당까지 합해 받은 댓가는  29,184원....

철야작업이라는것도 여러번 했었지요.

당시 자질구레한 군용품에 들어가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만들던 세경물산은 주문이 밀리면 그냥 밤을 세워 일했습니다.


지금의 서울환경은 천지개벽이 되었지요.

어려운 일들은 외국인들이 대부분 외노자들이 하고 그나마 1주일에 2일을 쉬는 나라...

한국을 부러워하는 나라들이 훨씬 더 많아졌고 귀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라...


어쩌다 아래 영상을 보니 그 시절이 떠올라 같이 소개해봅니다.

날씨가 덥습니다.

각시는 맨날 탁구장가고  저는 새벽에 텃밭 일과 꿀벌들 필요한 관리 조금 하고,9시쯤이면 들어와 아침먹고 낮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낮잠도 자고 유튜브도 보고...

몇년만에 심은 고구마 덕분에 고구마순 김치와 토종솔잎 김치..

우리 어렸을때는 부추를 '솔'이라 했는데 요즘 개량 부추는 크기는 하지만 맛,향기가 많이 떨어지는데 토종 부추는 작아도 맛과 향이 일품이지요.

수년전 마눌에게 양파를 듬뿍넣고 김치를 담아먹자는 저의 요구에 마눌이 만들어준 부추김치...

이 많은걸 어떻게 먹느냐는 마눌의 우려에도 부추김치는 아무리 많아도 다 먹습니다.

절대로 질리지않는 김치가 부추김치거든요. 

그냥 나물로 묻히는것보다 질리지않고 많이 먹습니다.

어허...결국 먹는 얘기로 끝이 나는군요~


우리도 애들을 셋 낳았는데...

당시에 막내는 출산시에 의료보험도 안되었는데...

넷을 낳고 싶었지만 마눌이 너무 약해져서 포기했는데....

마눌이 둘째까지 젖을 먹여 키우다보니 너무너무 약해져서 할수없이 셋째를 가졌을때는 옛날  꿀벌몇통을 가지고 우리와 이동하며 꿀을 땄던 정읍시내 살던 할머니...

마눌만 보면 말합니다.

꼭 꼭 흑염서 먹어라...

임신하면 절대로 빠뜨리지말고 흑염소 먹어라....


막내가 뱃속에 있을때 한마리..

출산후에 젖먹이면서 한마리...

흑염소 즙을 먹으면 마눌이 아니라 젖을 먹는 막내가 금새 통통해지더군요.

그외에도 말못할 혜택을 입고 태어난 막내...

막내는 그 내막을 모를것입니다.

임신중 1순위는 생로얄제리고 2순위는 흑염소즙 강력 추천합니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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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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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용님의 댓글

정희용
작성일
주인장 사장님께서 젊었을때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어찌하여 정읍에 오셔서 터를 잡으시고  양봉사업을 하시어 지금의 이런 여유러움과 부유함을(?) 이루어 놓으셨으니
삶의 목적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으셨다고 보입니다.

예전 80년도 후반에 강원도 양구,인제에서 군복무를 할 때 우연히 산속에서 야영을 하며 훈련을 하는데
어느 저의 또래 남성분이 산속에서 양봉을 치고 계시더군요.
여름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하얀 고무신을 신고  꿀 양봉을 텐트에서 채취하고 계셔서 잠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제가 그때  전역 몇개월 남았는데 그분이 저와 나이가 같고 스물넷이였는데,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예전에 하던 양봉업을 직접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꿀을 조금 음미해보라고 주셨는데,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꿀이라는 것을 먹어보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두승산꿀벌 사장님과 너무나 비슷하게 닮으셨다는 것을, 제가 처음으로 우연히 두승산꿀벌 싸이트를
알게되어 홈페이지 사장님 얼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당시 그 분이 젊은 나이에 양봉사업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전역하고나서 양봉업을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거든요.
산에서 텐트를 치고 양봉업을 하시는게 너무나 부럽기도하고요.^^

저도 그 당시 나이가 어리고 세상물정을 아직 모르는 나이였기에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철이 없는 생각이었지요.
양봉업이 얼마나 힘이들고 고단한지 지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현재는 퇴직을 1년 앞두고 제 2의 인생플랜을 세우고 있으며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 외국인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전국방방곳곳에 시골에서도 외국인들을 접하는데, 대부분 노동근로자분 들입니다.
산업근로자,농업근로자분들이 대한민국 저변의 힘든 직군 곳곳에 이분들이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파트짓는 곳에도 팀장이 중국인 이시고 한국분들이 그 팀장 밑에서 일을 하시며 외노자분들이 없으면 한국 노동기반이
흔들린다는 것도 지인분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정작 아이러니하게 한국 국민들 특히, 20,30대들이 일할 직장이 없다고 하는데, 너무나 한국 직장의 생태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지요.
연세가 70~80대 되신 어르신 분들이 많이들 현 20~30대 젊은 청년들을 꾸짖곤 합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젊은 청년들의 원하는 직종군이 없어서이고 아니면 경쟁이 심하여 그 직군에 취업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고 요즘 젊은 청년들 대학(전문대학포함)나오지 않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대학이 들어가기도 쉬습니다.
요즘 젊은 청년 부모세대들이 대부분 저의 또래이고 자녀들 많아야 2명입니다. 물론 세명도 있기는 합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젊은 친구들도 대학을 나오고 현장일을 하는 곳에서도 젊은 청년들 대부분 대학을 나왔습니다.
대학졸업장이 직업군을 모두 결정해 주는 시대는 아닌데, 각 직업군 곳곳에서 일을 하던 우리 시대와는 다르게
힘든 일을 하는 직종이나 속히 3D현상이 있는 곳은 가지 않으려 하니 그 직업군에 동남아,중국인,중앙아시아인들이
대체인력군으로 취업하고 자리를 잡아 귀화라려는 외국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방에서도 그리고 경기도 지역에서 업무상 일을 하다보면 가족단위 외국근로자분들을 많이들 봅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한국에 귀화하여 터를 잡고 사시는 분들이 요즘 한류,코리아가 대세라서 그런지
흔하게 봅니다.
한국이 살기 정말 좋은 나라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피부로 느낍니다. 의료체계, 교통, 교육, 취업할 수 있는 직장군 등등...
단지 피부색으로 서양인과 다르게 약간의 차별을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외국인 천지라 가끔은 제2의고향 인천 부평을 집안 대소사로 가다보면 부평역등 상가나 곳곳에
동남아인들,중앙아시아인들이 너무나 많아 내가 오히려 외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더군요.
이렇게 외국노동자 특히 동남아,중국인,중앙아시아인들이 한국에 많고 거주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의문을 다는 사람들도 많이들 있습니다.
저도 공감이 갑니다.
한국사람들이 결혼 할 나이에 결혼을 하지않고 혼자살고 하니 당연히 그 인구수가 절벽을 이루고 대한민국 곳곳에 안좋은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죠.
유치원,초등,중고등학교가 더 나아가 대학이 폐교가 되고 통폐합이 됩니다.
산업인력 인구수가 줄어들면 국세든 지방세든 세금이 거두는 것이 줄어들고,  향후 그 부담은 지금 10대,20대,30대 청년들이 몫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지금도 정부에서 청년수당,실업수당 등등.. 세금이 흘러 나가는데 과연 청년들에게 왜 청년수당을 지급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저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려는 표하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습니다.
어쩌다 사장님께서 옛날 얘기를 꺼내시기에 저도 시골출신이라 전라도에서 부추를 솔지라고 했던 어렸을적 기억이 있습니다.
솔지가 삭으면 정말 제가 좋아했던 찬이었죠. 어렸을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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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여유로움과 부유함을 이루었다는 말씀중 여유로움은 맞지만 부유함은 맞지않습니다.
시골집이나 땅이래봐야 도시에 비하면 그가치는 너무 보잘것없으니까요.
다만 싸더라도 제가 만족하니 욕심부릴필요가 없고 그래서 여유가 있는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며 살거든요...
하고 싶다는 일들이 이런저런 작물들 재배이고 아직까지는 텃밭 수준이니 큰 돈 들어갈 일도 없고...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을 왜 사람들은 안하는지 저는 이해가 안간답니다~

제가 고생했던 시절은 저 뿐아니고 우리나라 전체가 그랬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렇게 지지리도 가난했던 나라가 이제는 누구나 선망하고 귀화하고 싶은 나라가 되었구나..
감개무량해서 퍼온 영상입니다.
저는 영등포 쪽에 외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부평쪽은 내국인보다 더많이 보인다니 저도 좀 걱정되네요..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농촌에서조차 외국인들을 써야 하는 실정이라고 하니..
하지만 저는 어떤 경우에도 이나라에 대하여 큰 걱정을 하지않습니다.
지금까지  보면 우리나라는 하늘이 지켜주는것같지않나요?
희용님은 그때 벌 안키우기 참 잘하신것입니다.
지금쯤 훨씬 좋은 직업 가지셨을테고 자리 잡으셨겠지요.

저의 옛날 이야기중 너무 어려웠던 얘기만 썼는데  사실은 좋은 시절도 있었답니다.
돈을 벌려면 돈이 있는곳으로 가야 한다고...강남의 부동산회사에서  동기들 80명 중에서 실적 1위를 했던 때....
그때 알았지요
세상은 궁하면 통하고 마음먹고 꿈꾸면 이루어진다는걸....
중고차지만 포니승용차를 타던 시절이었지요~
부동산 중개사 제도가 시행되던 시기 첫 1회 시험때 한달 공부하고 응시했는데 그리 어렵지도 않은 시험에 아슬아슬하게 탈락..
제 적성에 맞는 일도 아니었으니 떨어진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희용님의 고향은 아마 전남쪽이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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