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던 옛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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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6-08-01 16: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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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귀화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귀화시험을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공부해야 할것도 많고 외워야 할것도 많고...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네요.
한창 어려운 시절이었던 7~80년대에 서울에서 청춘을 보냈던 저는 서울모습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합니다.
화양동, 성수동, 송파동, 문정동...
옛날의 송파,문정,장지동 부근은 당시에 성남에서 서울로 향하는 2차선 도로였지요.
버스는 오직 570번 한개 노선....
2차선 가에는 인도도 없어서 바로 흙먼지가 날리는 곳...
그 길을 벗어난 양쪽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벼농사를 짓던곳...
송파동 부근에는 석촌동이라는 마을로 들어가는 지금의 농로크기의 도로가 있었는데 그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세워져있던...화려한 생김에 비해 초라한 관리를 받던 삼전도비...
조금 떨어진곳에는 2차선 양쪽에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어디에서 물이 들어오는지 몰라도 꽤 깨끗해고 새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의 석촌호수가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성수동에서 화양동으로 흐르던 검붉게 오염된 하천...
이 하천을 복개하고 그위로 전철 2호선이 세워졌는데 지금의 성수동 위세를 보면 제2의 청계천으로 만들수도...
전철만 아니었다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어렵겠지요.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들어서있는 크고작은 공장들 외에 초록색을 보기 힘든곳...
당시의 서울은 그랬습니다.
전봇대에는 견습공 모집 공고들이 부지기수...
저는 좀 길게 다닌곳도 있지만 아마 1년을 넘긴곳이 없었을것입니다.
하루 8시간을 근무하고 잔업시간만 110시간...
그리고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는 일당 550원에 잔업수당까지 합해 받은 댓가는 29,184원....
철야작업이라는것도 여러번 했었지요.
당시 자질구레한 군용품에 들어가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만들던 세경물산은 주문이 밀리면 그냥 밤을 세워 일했습니다.
지금의 서울환경은 천지개벽이 되었지요.
어려운 일들은 외국인들이 대부분 외노자들이 하고 그나마 1주일에 2일을 쉬는 나라...
한국을 부러워하는 나라들이 훨씬 더 많아졌고 귀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라...
어쩌다 아래 영상을 보니 그 시절이 떠올라 같이 소개해봅니다.
날씨가 덥습니다.
각시는 맨날 탁구장가고 저는 새벽에 텃밭 일과 꿀벌들 필요한 관리 조금 하고,9시쯤이면 들어와 아침먹고 낮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낮잠도 자고 유튜브도 보고...
몇년만에 심은 고구마 덕분에 고구마순 김치와 토종솔잎 김치..
우리 어렸을때는 부추를 '솔'이라 했는데 요즘 개량 부추는 크기는 하지만 맛,향기가 많이 떨어지는데 토종 부추는 작아도 맛과 향이 일품이지요.
수년전 마눌에게 양파를 듬뿍넣고 김치를 담아먹자는 저의 요구에 마눌이 만들어준 부추김치...
이 많은걸 어떻게 먹느냐는 마눌의 우려에도 부추김치는 아무리 많아도 다 먹습니다.
절대로 질리지않는 김치가 부추김치거든요.
그냥 나물로 묻히는것보다 질리지않고 많이 먹습니다.
어허...결국 먹는 얘기로 끝이 나는군요~
우리도 애들을 셋 낳았는데...
당시에 막내는 출산시에 의료보험도 안되었는데...
넷을 낳고 싶었지만 마눌이 너무 약해져서 포기했는데....
마눌이 둘째까지 젖을 먹여 키우다보니 너무너무 약해져서 할수없이 셋째를 가졌을때는 옛날 꿀벌몇통을 가지고 우리와 이동하며 꿀을 땄던 정읍시내 살던 할머니...
마눌만 보면 말합니다.
꼭 꼭 흑염서 먹어라...
임신하면 절대로 빠뜨리지말고 흑염소 먹어라....
막내가 뱃속에 있을때 한마리..
출산후에 젖먹이면서 한마리...
흑염소 즙을 먹으면 마눌이 아니라 젖을 먹는 막내가 금새 통통해지더군요.
그외에도 말못할 혜택을 입고 태어난 막내...
막내는 그 내막을 모를것입니다.
임신중 1순위는 생로얄제리고 2순위는 흑염소즙 강력 추천합니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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